돌이켜 보거든 임완청의 유년 시절은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 비하면 조금은 나았다고 평할 수 있었다. 아직 볼살이 무르고 둥근 아이란 저보다 한참 큰 어른들의 눈에 제법 귀여웠고, 처지가 딱하다 보니 빈손으로 나다니거든 다들 손에 무얼 쥐여주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완청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묻거늘 아이는 나름 머리를 굴리다, 제 눈에 가장 있어 보이는 단어를 집어들었다. 식당 종업원이니, 가사 도우미니. 그런 말을 하기에는 임완청이 너무 어렸고, 어린아이가 지나치게 현실적인 말을 꺼내거든 어른들은 떫은 얼굴이 되곤 했으니까. 그러거든 어른들은 불쌍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새끼손가락에 기대를 걸어주었다. 그래. 우리 완청이는 인물도 훤하고 말도 잘하니 나중에 무얼 하든 어련히 잘할 게다. 그래서, 결국 그리 듣기 좋은 말을 딛고 서서 화면 너머의 가상만을 좇다 보니 자란 아이에게 남은 건 무엇인가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받았던 그 순수한 애정에 대한 허기였다.
瞽馬聞鈴
밤에는 음식과 술을 나르고, 낮에는 촬영장의 배경이 된 채로 꿈을 꿨다. 화면 속의 그들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연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입은 채로 애정과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꿈을. 그러나 현실은 어린 시절에 들은 말들처럼 달콤하지 않아 그녀에게 기회가 오는 일은 없었다. 몇 년을 이 판에 몸을 담갔건만 경력이라고는 무명 감독의 영화에 얼굴을 비춘 게 몇 번. 근래 들어 한창 뜨는 신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친구들과 무리 지어 길거리를 나다니는 와중에 감독이 배우를 해볼 생각은 없냐며 붙잡았다던데. 그건 대체 어느 세상의 이야기인지. 완청이 발을 붙인 이 땅에선 조연이 주연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간신히 붙잡은 조연 자리도 밀려나는 일만이 빈번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거든 끝이 없었다. 화려하지 못한 얼굴이, 화면에 나오면 부해 보이는 몸이, 지나치게 커서 튀는 키가, 사근사근하거나 귀염성 있지 못한 태도가. 어쩌면 사랑받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한 임완청이라는 인간 그 자체가.
꼭 제 혹을 빨아먹고 사는 낙타처럼, 임완청은 점점 말라갔다. 음식을 제대로 씹고 삼키지 못하는 위장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신물을 토했고, 피부는 날이 갈수록 푸석해졌다. 거울을 보며 분칠을 할 때면 임완청은 매번 겁이 났다. 이대로 혹이 다 바닥나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한순간인 젊음이 지고, 외모가 사그라들거든 제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을 불태운 끝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지금 자신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은 무얼 위해 존재한 것인가. 결국 돌고 돌아 결론은 하나였고, 시야가 좁아진 사람은 남들이 미는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진탕 술을 마시고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방에서 깨어나는 게 몇 번. 옷을 벗은 채로 이게 예술인지 아닌지 모를 것을 찍기를 몇 번. 임완청은 그토록 바라던 빛의 끝자락에는 발을 걸쳤다. 아버지뻘은 될 조 감독은 완청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웃었다. 이 바닥 돌아가는 게 다 이런데, 완청 씨가 순진했던 거지. 너무 신경 말어. 응? 요즘 도통 기운이 없어 보이니 내 걱정이네. 그런 거 아니에요. 어제 감독님이 술을 너무 먹여서 어지러워서 그렇지. 그렇게 먹고도 서요? 남자가 몸을 떨며 웃자, 천장에 맺힌 그림자는 커다랗게 부풀어 남은 빛을 죄다 삼켰다. 임완청은 울렁거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배우란 결국 남을 연기하는 직업인데. 속이 조금 문드러지고, 더럽든 무슨 상관이랴. 결국 남는 것은 사진과 영상과 필름이었다. 언젠가 그 위에 담긴 저를 본 인간이 수천이 된다면, 적어도 저를 좋아하는 이는 개중에 오분의 일은 되지 않겠는가… 부족하다면 몇 편이고 더 찍으면 그만이었다. 하루에 만들어지는 영화가 몇 편인데. 찍다 보면 하나쯤은 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완청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커튼을 걷거든 쏟아질 네온사인 빛 대신, 누렇게 때가 탄 스탠드만이 낮게 일렁이는 방은 오늘도 거짓말처럼 아늑하고 눈부셨다. 어차피 썩어가는 몸이라면 카메라 불빛 아래서 썩어가는 게 나았다. 적어도 그 프레임 안의 시간만큼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누군가의 애정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갈 터였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