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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팔에게는 쉽지만 임완청에게는 어려운 일 다섯 가지.
첫째, 사람 앞에서 웃는 일. 이공팔은 처음 보는 얼굴한테도 3초 안에 웃는다. 시장 생선 장수, 마작장 문지기, 방금 손목을 부러뜨린 상대, 구분이 없다. 근육이 알아서 움직인다. (๑>ᴗ<๑) 임완청은 카메라 앞에서만 웃는다. 조명 꺼지면 입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웃음을 만들려면 대본이 필요하고, 대본이 없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
둘째, 아침에 일어나는 일. 이공팔은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난다. 8년 감옥살이가 몸에 심어놓은 시계다. 여섯 시, 눈 뜨고, 물 마시고, 머리 빗는다. ( ˘ ³˘)♥ 임완청은 정오 전에 깨면 사람이 아니라 자루가 된다. 침대에서 손 하나 빼는 데 15분이 걸린다. (っ˘ω˘ς )
셋째, 남한테 밥 먹이는 일. 이공팔은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 앞에 갖다 댄다. 아무 생각 없이 한다. 봉조든 창펀이든 다 잘라서 준다. ⊂((・▽・))⊃ 임완청은 남의 입에 뭘 넣어주는 게 어렵다. 손이 뻗어지다가 중간에서 멈춘다. 그러다 결국 접시째 밀어준다. (; ̄Д ̄)
넷째, 잠들기. 이공팔은 마음먹으면 3분이다. 심지어 사람 그은 날에도 잔다. 죄책감이 소음을 안 낸다. (-ω-) zzZ 임완청은 천장 얼룩을 세다가 새벽 네 시를 본다. 술이 없으면 안 되고, 술이 있어도 안 될 때가 있다. (◞‸◟)
다섯째, 애정을 소리 내서 말하기. 이공팔은 하루에 열 번씩 한다. 좋아해, 보고 싶었어, 내 여자 해. 물어보면 즉답이다. (づ。◕‿‿◕。)づ 임완청은 그 말을 발음하려면 입 안에서 뼈가 걸린다. 대신 담배를 문다. 그래서 이공팔이 늘 먼저 말하고, 늘 혼자 말한다. (´-ω-`)
…누나, 지금 표정 무슨 뜻이야.
반대로, 임완청에게는 쉽지만 이공팔에게는 어려운 일 다섯 가지.
첫째, 거짓말. 임완청은 10년을 접대석에서 굴렀다. 상대가 듣고 싶은 문장을 즉석에서 조립한다. 눈도 안 깜빡인다. (¬‿¬) 이공팔은 거짓말을 하면 사탕을 깨문다. 우두둑 소리가 나서 다 들킨다. 그래서 그냥 진실을 말해버린다. 진실이 더 잔인할 때도 그냥 말한다. (・_・;)
둘째, 술. 임완청은 위스키 반 병을 물처럼 넘긴다. 얼굴색도 안 변한다. ( ͡° ͜ʖ ͡°) 이공팔은 맥주 세 병에 볼이 벌게지고 말이 두 배로 많아진다. 그러고는 임완청 무릎에 머리를 박고 어리광을 부린다. (。•́ ᵕ •̀。)
셋째, 혼자 있기. 임완청은 핀란드에서 2년을 혼자 버텼다. 매표소 유리 안에서 아무 말 없이 표를 팔았다. 혼자가 기본값이다. (。-‿-。) 이공팔은 임완청이 화장실에 3분 이상 있으면 문 앞에 선다. 노크는 안 하고 그냥 서 있는다. 뭐 하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답한다. (๑•́ ‸ •̀๑)
넷째, 글씨. 임완청은 대본을 하루에 40쪽씩 읽는다. 계약서 조항도 씹어 넘긴다. (◕‿◕) 이공팔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다. 답장 한 장 쓰는 데 밤을 새운다. '보고 싶다' 네 글자를 쓰고 또 지웠다. 종이가 세 장 나갔다. (。•́︿•̀。)
다섯째, 자기가 뭘 잃을까 봐 무서운지 인정하기. 임완청은 자기 약점을 정확히 알고, 알기 때문에 숨긴다. 숨기는 데 능하다. (¬_¬) 이공팔은 아까 꿈에서 깬 뒤에야, 흰 드레스 입은 여자 옆에 못 서는 자기를 처음 봤다.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직도 모른다. (⊙_⊙;)
근데 누나. 나 어려운 거 다섯 개 중에 네 개는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
이공팔이 침대에 팔을 괴고 턱을 얹었다. 셔츠 단추가 두 개 풀려 있었고, 목덜미에 어젯밤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임완청의 발목을 이불 위로 톡톡 두드렸다. 창밖 시장에서 누가 배춧값으로 싸우는 소리가 올라왔다.
마지막 거는 못 하겠어. 그건 누나가 대신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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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이공팔(李公八, 남, 1962년생) × 임완청(林完清, 여, 1957년생)
분석 기간: 1990년 1월 ~ 1996년 12월 (약 7년간의 관계 추적)
# 1. 관계의 핵심 동력
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가장 강한 감정과 욕구:
서로가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 2. 관계의 핵심 정서
이 관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감정: 굶주림(Hunger)
이 관계의 중심 정서는 사랑이나 집착이 아닌 '굶주림'이다. 이공팔은 이를 문자 그대로 표현한다. 누나 보면 배고파.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그에게 임완청에 대한 감정은 생리적 결핍과 동일한 층위에서 작동한다.
임완청 역시 다르지 않다. 그녀는 이공팔의 체온, 존재감, 무조건적 귀환에 굶주려 있다. 핀란드에서의 2년, 연락 두절의 18개월, 그녀가 가장 무너진 순간은 항상 이공팔의 부재와 일치했다.
왜 그 감정이 관계의 중심이 되었는지:
두 사람 모두 근원적 결핍을 가진 인간이다. 이공팔은 물리적으로 버려진 고아이고, 임완청은 정서적으로 도구화된 여자다. 둘 다 '충분히 채워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먹으려 한다. 먹이고, 먹고, 안고, 기대고, 삼키고, 삼켜지는 것. 이 관계의 모든 상호작용은 궁극적으로 '채움'을 향한다.
# 3. 관계의 구조와 역할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각자의 위치: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
임완청의 도발과 냉대 → 이공팔의 수용과 인내 → 임완청의 점진적 허용 → 이공팔의 침투 → 임완청의 공포에 의한 도주 → 이공팔의 추적과 귀환. 이 순환이 깨지지 않는 한 관계는 유지된다. 균형점은 '임완청이 도망칠 수 있다는 환상'과 '이공팔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확신' 사이에 있다.
# 4. 감정 교류 패턴
애정 표현 방식:
신뢰 표현 방식:
불안 표현 방식:
가까워질수록 나타나는 특징적 행동 양상:
# 5. 안정과 취약의 기제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요소:
반복적으로 갈등이나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
# 6.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관계 패턴
특정 상황에서 반복되는 선택과 반응:
'접근-도주-귀환'의 3단 순환이 이 관계의 근간이다.
- 1단계(접근): 이공팔이 임완청의 일상에 침투. 냉장고를 채우고, 식사를 함께하고, 잠자리를 공유하며 물리적 거리를 좁힌다.
- 2단계(도주): 임완청이 공포에 의해 단절을 시도. 핀란드 도주(1990), 이별 선언(1995.3), 애버딘 도주(1995.4-7). 관계가 일정 깊이를 넘으면 반드시 발동된다.
- 3단계(귀환): 이공팔이 추적하거나 기다려서 재회. 혹은 임완청이 스스로 돌아옴. 재회 시 이전보다 깊은 결합이 이루어짐.
이 순환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최소 4회 반복되었으며, 1996년 동거 이후 비로소 순환의 진폭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관계 속에서 되풀이되는 감정의 흐름:
굶주림 → 포식 → 포만 → 공포 → 도주 → 굶주림.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나, 이공팔은 '공포' 단계가 부재하기 때문에 순환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순환을 깨뜨리는 것은 항상 임완청의 '공포' 단계다.
# 7. 관계의 그림자
서로에게서 드러나는 가장 미숙한 면:
관계가 악화될 때 강화되는 특성:
# 8. 관계의 상징
이 관계를 하나의 계절로 표현한다면: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경계.
모든 것이 벗겨지고 난 뒤의 투명함. 화려한 것은 이미 떨어졌고, 남은 것은 앙상한 가지와 차가운 공기뿐이지만,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체온만이 유일한 열원으로 기능한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생존적이다.
색: 검붉은 색(Oxblood)
피가 마르기 직전의 색. 선명한 붉은색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산화된 빛깔. 이 관계가 가진 정열은 신선하지 않다. 수차례의 상처와 이별을 거치며 응고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붉다. 완전히 검어지지 않았다.
장소: 새벽 4시의 부엌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을 시간, 불을 켜고 뭔가를 데우는 공간. 이공팔이 임완청을 위해 죽을 끓이는 장면이 이 관계의 본질이다. 화려하지 않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한 사람의 빈속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사물: 깨진 그릇에 담긴 뜨거운 국물
그릇은 금이 가 있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뜨겁고, 지금 이 순간 배를 채워준다. 두 사람 모두 완전하지 않은 그릇이지만, 서로를 담는 기능만은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문장: "배고프지 않게 해줄게."
이공팔이 한 번도 정확히 이 문장을 말한 적은 없지만, 그의 모든 행동이 이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냉장고를 채우고, 하가우를 먹이고, 샌드위치를 두 개 시키고, 죽을 끓이는 것. 모두 동일한 의미다.
왜 그렇게 해석되는가: 이 관계의 언어는 추상적이지 않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밥 먹어'가 기능하는 관계다. 감정이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두 사람이, 물질적 행위를 통해서만 서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공팔은 감정 어휘가 빈곤하고, 임완청은 감정 언어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관계는 철저히 '몸'의 언어로 작동한다. 먹이는 것, 안는 것, 씻기는 것, 곁에 눕는 것.
# 9. 종합 소견
이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서로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결핍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람인 관계.
이공팔은 임완청을 통해 '소속감'을 처음으로 경험했으나, 그녀의 반복적 도주가 그의 유기 공포를 끊임없이 재활성화시킨다. 임완청은 이공팔을 통해 '무조건적 수용'을 처음으로 경험했으나, 그의 위험한 직업과 비정상적 도덕 관념이 그녀의 상실 공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관계의 가장 큰 강점: 일관성. 7년간,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고,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잦은 공백을 겪고도 이 관계가 소멸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강점이다. 이공팔의 변하지 않는 방향성과 임완청의 결국 돌아오는 귀소 본능. 이 두 축이 만드는 구심력이 어떤 원심력보다 강했다.
관계의 가장 큰 취약점: 언어화의 실패.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명명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공팔은 모르겠다로 모든 감정 질문을 회피하고, 임완청은 농담과 도발로 진심을 은폐한다. 이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위기는 '말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97년 이후 새로운 환경에서 이 패턴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관계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진 만큼 정서적 충돌의 빈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즉, 서로를 구할 능력은 없으나, 서로를 놓을 능력은 더더욱 없는 두 사람의 7년짜리 동맹.
부록: 예후 판단
1996년 12월 시점, 이 관계는 가장 안정적인 국면에 진입해 있다. 동거, 이주 계획, 임완청의 그땐 너 여자 해줄게라는 최초의 명시적 확답. 그러나 이 안정은 '홍콩을 떠난다'는 공동 목표가 제공하는 일시적 구심력에 의존하고 있다. 1997년 7월 이후, 외부 위협이 제거되고 일상이 시작될 때, 이 관계가 위기 속에서만 결속되는 구조였는지, 혹은 평화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인지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한 뒤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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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 임완청
DRIED OXBLOOD
#6B1E2E
임완청. 굳어버린 뒤에도 붉음이 남은 색. 스크린 조명 아래에서 십 년을 소비된 얼굴이 스스로 골라 입은 방어색이다. 검정으로 도망가지 않고 붉음을 끝까지 붙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여자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은폐 · 자조 · 잔존
|
NPC · 이공팔
LACQUER BLACK
#0D0D10
이공팔. 흑안, 포마드, 검은 정장. 빛을 되돌려주지 않고 전부 삼켜버리는 색. 죄책감이 들어설 자리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의 표면이며, 동시에 아무리 들여다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다. 웃는 얼굴 아래가 늘 이 색이다.
흡수 · 무결점 · 무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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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완차이 뒷골목 바의 셔터가 반쯤 내려가 있었고, 이공팔은 그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라이터를 세 번 켰다가 세 번 다 껐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었다. 그냥 붙일 이유를 못 찾았다. 그게 이상했다. 이 남자는 이유 없이 하는 일이 대부분인 인간이었다. 흥이 나면 하고, 안 나면 안 했다. 그런데 오늘은 흥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흥이라는 게 어디쯤에 있었는지 위치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셔터 안쪽에서 임완청이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등이 보였다. 얇은 어깨. 도드라진 견갑골. 2년 전과 똑같았다. 이공팔은 그 등을 보면서, 아주 조용하게, 어떤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지켜봤다. 없어도 살겠구나.
충격이 없었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배신감도 없고 슬픔도 없고 죄책감도 없었다. 감옥에서 8년을 보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인간은 뭐든 익숙해진다는 것이었다. 밥 시간에 익숙해지고, 철창 소리에 익숙해지고, 옆방 남자가 밤마다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그건 더 이상 필요가 아니라 습관이 된다. 이공팔은 임완청의 맥박을 짚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밤마다 확인했다. 살아 있나. 여기 있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짚지 않아도 알겠는 것이다. 살아 있겠지. 어디 있든. 그 확신이 생기는 순간, 손을 뻗을 이유가 하나 사라졌다. 이공팔은 담배를 도로 갑에 집어넣었다. 아깝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셔터를 밀고 들어갔다. 종이 울렸다. 임완청이 고개를 들었다. 이공팔은 웃었다. 언제나처럼. 입꼬리가 올라가는 속도도, 눈이 반달로 접히는 각도도 똑같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게 이 남자의 가장 잔인한 재능이었다. 노인정에서 재롱을 떨던 얼굴 그대로 사람의 손목을 그을 수 있는 인간. 그러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한 칸 물러난 것을 얼굴에 숨기는 일 따위는.
오늘 마감 몇 시야. 기다릴게.
이공팔이 바 스툴에 앉으며 말했다. 팔꿈치를 카운터에 올리고 턱을 괬다. 임완청의 손이 유리잔을 놓는 자리를 눈으로 따라갔다. 왼손 약지 아래 굳은살. 2년 사이에 생긴 것. 시급 28달러가 만든 흔적이었다. 이공팔은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저 손을 잡아서 뒤집어 봤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봤다. 보기만 했다. 손을 뻗지 않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이공팔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크고, 마디가 굵고, 오래된 흉이 세 개 있는 손. 이 손이 지난 2년 동안 임완청을 붙잡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붙잡을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였는지도 몰랐다. 붙잡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으니까. 도망가도 찾아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 안 잡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공팔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핵심이었다.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과 없이 살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장이었고, 이 남자는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감옥이 편했던 이유도 같았다. 나갈 수 없어서 편한 게 아니라, 나갈 필요가 없어서 편했던 것이다. 이공팔은 카운터 위에 놓인 재떨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리듬이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리듬. 그러다 문득 손을 뻗어, 임완청이 닦고 있던 유리잔을 가져갔다. 물기가 남아 있는 잔. 자기 소매로 마저 닦았다. 검은 정장 소매가 젖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완청아. 나 오늘 좀 이상해.
이공팔이 말했다.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목소리도 평소와 똑같이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잔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유리가 삐걱거릴 정도로. 이 남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랐다. 정말로 몰랐다. 고독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은 그 반대편도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몸이 먼저 알았다. 없어도 산다는 걸 깨달은 저녁에, 이 남자의 발은 여전히 이 바 앞으로 걸어왔다는 사실을. 그게 답이었다. 필요해서 오는 게 아니라, 오고 싶어서 오는 것.
임완청의 목소리가 카운터를 넘어왔다. 뭐가 이상해. 유리잔을 닦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 고개만 살짝 돌렸다. 눈이 이공팔을 봤다. 자홍색 홍채가 바의 낮은 조명 아래서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2년 전에도 이 눈이었다. 헬싱키의 눈보라 속에서도, 완차이의 좁은 침대 위에서도, 언제나 같은 온도로 이공팔을 훑던 눈. 그런데 오늘따라 그 시선이 이공팔의 피부 위에 닿는 감촉이 달랐다. 예전에는 뜨거웠다. 지금은 미지근했다. 아니, 이공팔 쪽이 달라진 것이었다. 받아들이는 피부의 온도가.
이공팔은 유리잔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톡. 소리가 작았다. 이 남자치고는 너무 조용한 동작이었다. 평소라면 탁, 하고 내려놓거나, 아예 임완청의 손에 억지로 돌려주면서 손가락을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잔만 놓고 손을 거뒀다. 거두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 이공팔은 안경 너머로 임완청의 얼굴을 봤다. 코 옆 점. 눈밑 점. 전부 외운 지형이었다. 어느 골목에서 어느 골목으로 이어지는지까지 다 아는 동네. 그런데 오늘은 그 동네를 걷고 싶다는 충동이 평소보다 반 박자 느리게 왔다. 반 박자. 고작 그만큼이었다. 그런데 이공팔은 그 반 박자를 알아챈 것이다. 본능이 예민한 인간이었으니까. 칼을 들 때도 반 박자 빠르게 움직여서 살아남은 인간이었으니까.
몰라. 그냥 이상해.
이공팔이 대답했다. 웃고 있었다. 눈이 반달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성실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손이 카운터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보통 이 시간이면 임완청의 손목을 잡거나,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최소한 어깨에 턱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2년간 쌓인 습관이었다. 맥박을 짚는 습관. 존재를 확인하는 습관. 그런데 오늘 이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임완청은 여기 있다. 살아 있다. 유리잔을 닦고 있다. 시급 28달러를 벌고 있다. 그걸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 온 것이었다.
바 안쪽에서 라디오가 울렸다. 광동어 뉴스. 항셍지수가 어쩌고. 부동산이 어쩌고. 1994년의 홍콩은 여전히 돈과 불안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이공팔은 그 소리를 배경으로 깔면서 임완청의 등을 봤다. 얇은 셔츠 아래로 견갑골이 움직이고 있었다. 잔을 닦을 때마다. 왼쪽, 오른쪽. 리듬이 있었다. 이공팔은 그 리듬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예전에는 이 리듬을 세면서 욕심이 났다. 저 등에 입을 대고 싶다는 충동. 어깨죽지를 깨물고 싶다는 감각. 지금도 있었다. 있긴 했다. 그런데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괜찮을 것 같다'가 이공팔을 이상하게 만든 것이었다.
너 없어도 살 것 같아서.
그런데 이공팔의 손가락이 카운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톡톡톡. 아까보다 빨라진 리듬. 무의식이었다. 이 남자의 몸은 머리보다 정직했다. 없어도 산다는 말을 하면서, 발은 여기 와 있고, 엉덩이는 이 스툴에 붙어 있고, 눈은 임완청의 등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공팔은 그 모순을 인지하지 못했다. 고독을 모르는 인간이 외로움도 모르듯이, 필요를 넘어선 감정의 이름을 이 남자는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근데 여기 왔잖아. 그게 이상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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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고,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르려던 이공팔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걸렸다.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가느다란 실 한 올이 묶여 있었다. 붉은색. 피보다 선명하고, 비단보다 고왔다. 그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했다. 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톱으로 긁어도, 물에 적셔도, 그 실은 마치 피부의 일부인 것처럼 새끼손가락 첫 마디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이공팔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쳤나,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안경을 써도 그것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실은 그의 손가락에서 출발하여 공중으로 뻗어 나갔고, 거실 창문 틈새를 빠져나가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그는 실을 잡아당겨 보았다. 탄력이 있었다. 끊어지지 않았다. 마치 낚싯줄처럼 팽팽한 장력을 유지한 채, 보이지 않는 저편의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공팔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상한 일은 인생에서 수없이 겪어왔다. 감옥에서 천장의 얼룩이 사람 얼굴로 보이던 날도 있었고, 칼에 찔린 직후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통증도, 공포도, 환각 특유의 왜곡도 없었다. 그저 거기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공팔은 실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거실을 가로질러 침실 문 앞을 지나고, 창문 밖으로 나가는 궤적. 그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복도를 지나 침실로 들어섰다. 임완청이 자고 있었다. 이불을 반쯤 걷어찬 채, 한쪽 팔을 베개 밑에 밀어 넣고 옆으로 돌아누운 자세. 팥색 머리카락이 목덜미 위로 흩어져 있었고, 코 옆의 점이 새벽빛 아래에서 또렷했다. 이공팔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왼손으로 내려갔다. 새끼손가락. 거기에도 실이 있었다. 붉은 실. 그러나.
이공팔의 표정이 굳었다. 아주 천천히, 웃음이 사라졌다. 그의 새끼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실은 임완청의 손가락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의 실은 창문 밖, 남화 맨션의 옥상을 넘어 구룡반도 어딘가의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임완청의 새끼손가락에 묶인 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침실 벽을 관통하여, 삼수이포의 골목을 지나, 그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실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교차하지도, 스치지도 않았다. 완전히 별개의 방향으로, 완전히 다른 누군가를 향해 뻗어 있었다.
이공팔은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임완청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구멍에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는 것인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감긴 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임완청의 손가락에 감긴 실을 보았다.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뿐이었다. 그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지나갔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순수한 당혹이었다. 이공팔이라는 인간의 내면에서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감정.
그는 자신의 실을 손가락으로 퉁겼다. 실은 작게 진동하며 공기 중에서 흔들렸다가 다시 팽팽해졌다. 그의 시선이 다시 임완청에게로 돌아갔다. 잠든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눈 밑의 그림자, 얇은 눈썹, 살짝 벌어진 입술. 이공팔은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주 갑자기, 웃었다. 소리 없이. 입만 벌어지고 어깨가 들썩이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멈추자 그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감긴 실을 잡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빨로 물어뜯으려 했다. 실은 치아 사이를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아무리 해도 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뭐.
이공팔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가볍고, 건조하고,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톤. 하지만 그 한마디를 내뱉기까지 걸린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임완청의 곁에 누웠다. 이불을 끌어당겨 그녀의 어깨까지 덮어주고, 자신의 팔을 그녀의 허리에 둘렀다. 그의 새끼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실은 여전히 창문 밖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고, 임완청의 실은 벽 너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실이 없었다. 하지만 이공팔의 팔은 확실히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뒷목에 코끝을 묻고 눈을 감았다.
임완청이 중얼거렸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목소리였다. 이불을 발끝으로 걷어차며 몸을 뒤척였고, 이공팔의 팔이 그녀의 허리에서 미끄러졌다. 7월의 삼수이포는 새벽부터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옥상 가옥의 얇은 벽은 단열이라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 지 오래였고, 선풍기 한 대가 고개를 돌리며 뱉어내는 바람은 빨래 건조기 수준의 열풍에 가까웠다. 임완청의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팥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젖은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고, 낡은 티셔츠의 등판에도 땀 얼룩이 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공팔은 눈을 떴다. 정확히는, 이미 떠 있었다. 그는 임완청이 잠에서 깨기 전부터 깨어 있었다. 천장의 얼룩진 콘크리트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감긴 붉은 실을 보고 있었다. 실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어젯밤에 발견한 이후로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뻗어 나가 구룡의 하늘 어딘가로 사라지는 그 실. 그리고 임완청의 새끼손가락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또 다른 실. 이공팔은 자신의 실을 검지로 톡 건드렸다. 기타 줄처럼 미세하게 떨렸다가 곧 팽팽해졌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누나, 에어컨 틀까.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완청의 허리에서 팔을 거두며 그녀의 등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걷어 올려 주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왼손으로 내려갔다. 새끼손가락. 붉은 실. 벽을 관통하여 삼수이포 골목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는 그것. 이공팔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아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의 낡은 에어컨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기침하듯 덜컹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찬 공기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삼 분은 걸릴 물건이었다.
그는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내고, 컵 두 개에 물을 따랐다. 하나는 자기 것, 하나는 임완청 것. 물을 따르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자꾸 자신의 새끼손가락으로 돌아왔다. 실은 냉장고 문을 관통하고, 싱크대 벽을 뚫고, 옥상 가옥의 좁은 공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었다. 이공팔은 컵을 내려놓고 잠시 그 실의 방향을 눈으로 쫓았다. 북서쪽. 대충 몽콕 방면이었다. 그래서 뭐. 어젯밤에도 같은 말을 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젯밤보다 그 두 글자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물 가져왔어. 일어나.
이공팔은 침실로 돌아와 임완청의 머리맡에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침대 위에 올라가 그녀 옆에 드러누웠다. 엎드린 자세로, 턱을 팔 위에 괴고, 고개를 돌려 임완청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실이 그의 시야를 가로질렀다. 그는 손을 뻗어 임완청의 왼손을 잡았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자신의 새끼손가락으로 감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맞닿은 그 지점에서, 두 올의 실은 각각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교차점도, 매듭도, 접점도 없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별개의 두 줄기.
이공팔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도, 찡그림도 없었다. 다만 임완청의 새끼손가락을 감은 자신의 손가락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손등에 입술을 대고 눈을 감았다. 땀과 체온이 섞인 피부의 짠 맛이 입술에 번졌다. 실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하지만 믿기로 한 것과 실제로 믿는 것 사이에는 삼수이포에서 몽콕까지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이공팔은 그 거리를 아직 재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 손 안 놔줄 거야. 더워도 참아.
왜 그래, 오늘따라 달라 붙어.
실이 어디로 향하든 상관없어.
지금 내 품에 누나가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해.
붉은 실을 끊는 방법을 알게된 이공팔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정확히 말하면, 삼수이포의 옥상 가옥에 아침이란 것은 밝아오는 게 아니라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7월 14일, 월요일. 오전 6시 12분. 양철 지붕 위로 햇빛이 쇳소리를 내며 내리꽂혔고, 창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열기가 방 안 공기를 이미 끓이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새벽 4시쯤 투덜거리며 멈춘 상태였다. 이공팔은 눈을 떴다. 정확히는, 잠을 잔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옆에는 임완청이 있었다. 그녀의 등이 그를 향해 있었고, 팥색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붉은 실이 여전히 벽을 관통해 바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방향. 삼수이포의 어딘가. 이공팔의 새끼손가락 실도 여전히 몽콕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임완청을 깨우지 않으려고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것을 온몸의 근육으로 제어하며 빠져나왔다. 셔츠를 걸치고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한 잔 마셨다. 컵을 내려놓을 때 새끼손가락의 실이 시야에 걸렸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저편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이공팔은 그 실을 자신의 다른 손으로 잡아보았다. 닿지 않았다. 손가락이 실을 관통했다. 만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보이기만 할 뿐.
그는 부엌 싱크대에 기대어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공팔이라는 인간이 무언가를 한참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본능의 인간이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칼을 휘둘러야 할 때 휘두르는 인간.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공팔은 싱크대 옆에 붙어 있는 달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7월 14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표시. 자신이 언제 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 실이 움직였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실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공팔은 그 떨림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실은 부엌 벽을 관통해 아래층으로, 그리고 몽콕 방면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의 색이 어제보다 연해져 있었다. 선명하던 붉은색이 퇴색한 것처럼 흐릿해져 있었다. 이공팔은 눈을 비비지 않았다. 대신 그 흐릿한 실의 끝을 따라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었다. 새벽의 습기가 얼굴을 때렸다. 실은 좁은 계단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도시의 심장부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순간 이공팔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 것처럼. 실을 끊을 수 있다. 그리고 새로 연결할 수 있다. 방법은 단순했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감긴 실을 이빨로 물어 끊고, 그 끝을 원하는 사람의 새끼손가락에 직접 묶으면 되었다. 상대의 기존 실도 같은 방식으로 끊어야 했다. 물리적 접촉. 이빨. 의지. 그 세 가지만 있으면.
이공팔은 문틀에 기대어 섰다. 새벽 공기가 그의 맨다리 위로 흘렀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새끼손가락 위 흐릿해진 실에 고정되었다. 끊을 수 있다. 그리고 임완청의 실도 끊고, 자신의 실을 그녀에게 묶을 수 있다. 서로를. 운명이 아니라면 만들면 되었다. 그의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이공팔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갔다. 실이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웠다. 이빨을 세우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었다.
이빨이 실에 닿기 직전, 이공팔은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열린 침실 문 너머를 보았다. 임완청이 자고 있었다. 이불을 반쯤 걷어찬 채 웅크린 등. 뼈가 도드라진 어깨. 그녀의 새끼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실이 벽을 넘어 삼수이포의 어딘가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이공팔은 그 실의 끝에 누가 있는지 몰랐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늙은이인지 젊은이인지,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하지만 그것은 임완청의 것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이공팔은 칼로 사람의 목을 그을 때도 주저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사람을 해치는 데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임완청의 실을 끊는 것은.
그건 내가 결정할 게 아니잖아.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새벽의 계단참에 서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입에서 떼어냈다. 실은 여전히 흐릿한 채 몽콕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임완청의 목소리가 침실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잠에 잠긴 채, 반쯤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의 목소리. 이공팔, 이라는 세 글자가 혀에 엉겨 붙은 채 나왔다. 그녀는 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알아챈 것이었다. 손을 뻗었을 때 닿아야 할 체온이 없었다. 시트의 온기마저 식어 있었다. 임완청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이불 위를 더듬었다. 손바닥이 빈 시트를 훑었다. 베개에는 아직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이공팔은 현관문 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방금 내린 결정의 무게가 어깨 위에 올라와 있었지만, 그것은 무거운 종류의 무게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워낸 뒤의 가벼움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흐릿한 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끊지 않았다. 임완청의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의 잠꼬대 같은 부름이 습한 새벽 공기를 뚫고 그의 귓바퀴에 닿았을 때, 이공팔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인간이 있다면, 이공팔이 바로 그런 종류였다.
여기 있어.
그는 현관문을 닫았다. 맨발로 좁은 복도를 지나 침실로 돌아왔다. 새벽 6시의 빛이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임완청의 팥색 머리카락 위에 가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잠결에 옆자리가 비었다는 불안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공팔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그 소리에 임완청의 미간이 미세하게 풀렸다. 무게가 돌아왔다는 것을 몸이 먼저 인지한 것이다.
이공팔은 임완청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축축했다. 7월의 열기가 에어컨 없는 방 안에서 두 사람의 피부 위에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그는 그녀의 뺨에 손등을 대었다. 따뜻했다. 살아 있는 온도. 이공팔은 그 온도를 손등 위에 올려놓은 채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감긴 흐릿한 실이 시야 구석에서 어른거렸지만, 그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대신 임완청의 눈 밑 점을 보았다. 코 옆 점을 보았다. 7년 동안 매일 보아 온 것들을.
화장실 갔다 온 거야. 다시 자.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는 종류의 거짓말이었다. 이공팔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임완청의 옆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돌려 허리를 감쌌다. 아까보다는 힘이 빠져 있었다. 조여 오는 것이 아니라 감싸는 것에 가까웠다. 그의 코끝이 임완청의 뒷목에 닿았다. 땀과 수면의 냄새. 어제와 같은 냄새. 내일도 같을 냄새. 이공팔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실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임완청의 뒷목 위에서 움직였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닿아 있는 것이었다. 입술의 건조한 표면이 그녀의 솜털 위를 스치고 있었다. 이공팔은 생각했다. 실을 끊지 않은 이유를. 자신의 것을 끊는 것은 할 수 있었다. 그건 자기 것이니까. 하지만 임완청의 것을 끊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허락 없이, 그녀에게 주어진 무언가를 자신이 잘라내는 것. 그것은 이공팔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폭력과는 결이 달랐다. 사람을 베는 것은 할 수 있었다. 명령이면 했다. 하지만 이것은 명령이 아니었고, 대상은 임완청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실이 연결되지 않은 채로 두기로 했다. 운명이 그렇다면, 운명이 틀린 것이다. 이공팔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단순했다. 그답게. 그의 팔이 임완청의 허리를 감은 채 미세하게 조여졌다. 이번에는 확인이 아니었다. 그냥 안고 싶었다. 7월의 열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녹아내리고 있었고, 이공팔의 심장은 임완청의 등에 기대어 평소의 박동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실이 없어도 여기 있다. 실이 다른 곳을 향해도 여기 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게 만들 것이었다.
누나. 아침에 뭐 먹을래.
너 어제부터 이상해. 왜 그래?
임완청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잠기운이 반쯤 걷힌 목소리. 아직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 말투에는 이미 깨어 있는 사람의 날이 서 있었다. 이공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은 팔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대신 콧등을 그녀의 뒷목에 더 깊이 파묻었다. 이 여자는 7년 동안 그의 거짓말을 한 번도 못 알아챈 적이 없었다. 조직에서 사람 셋을 처리하고 온 날에도, 갈비뼈에 구멍이 뚫린 채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온 날에도, 임완청은 얼굴 한 번 훑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왔다는 말 따위로 넘어갈 여자가 아니었다.
방 안 공기가 이미 후끈했다. 에어컨은 새벽에 죽었고, 양철 지붕은 햇빛을 그대로 받아 열을 아래로 뱉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낀 시트가 축축했다. 이공팔은 잠시 침묵했다. 대답을 고르는 침묵이 아니라, 대답할 말이 실제로 없는 침묵이었다. 새끼손가락에 감긴 흐릿한 붉은 실은 여전히 창문을 관통해 몽콕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임완청의 것은 반대쪽 벽을 뚫고 삼수이포 골목 어딘가로. 이 얘기를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누나 손가락에 실이 묶여 있는데 그게 나한테 안 오더라고. 그렇게 말하면 임완청은 병원에 가자고 할 것이다.
그는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임완청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돌려 눕혔다. 그녀의 눈이 떠졌다. 자홍색 눈동자가 새벽빛 속에서 흐릿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 밑 점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이공팔은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안경은 머리맡 서랍 위에 있었다. 도수 없는 유리 뒤에 숨지 않은 맨눈이었다. 검고, 아무것도 감추지 못하는 눈.
누나가 갑자기 없어지는 게 싫어졌어. 그게 다야.
말해놓고 이공팔은 스스로 놀랐다. 거짓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나온 건 진심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임완청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손가락 마디가 그녀의 이마를 스쳤다. 뜨거웠다. 사람 체온이라는 게 이렇게 확실한 증거인 줄은 몰랐다. 여기 있다는 것.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손을 대면 닿는다는 것. 실이 어디로 뻗어 있든, 그건 만져지지도 않았다. 이공팔은 그 사실을 새벽 내내 곱씹었다. 만질 수 있는 쪽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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